저희 친정엄마는 김치를 담글 때 산초를 조금 넣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김치에 산초를 넣는다고?”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지만,
특유의 향이 김치에 배면 생각보다 꽤 잘 어울립니다.
산초라고 하면 보통 추어탕에 넣는 향신료부터 떠올리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산초·초피류를 음식의 향을 내는 재료로 활용해왔습니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지금처럼 고춧가루가 김치의 주인공이 되기 전부터 비슷한 향신료가 김치에 들어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 고추가 없던 김치에는 무엇을 넣었을까요?
지금 김치에서 빠지기 어려운 것이 고춧가루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고추가 널리 사용되기 전 김치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옛 기록을 보면 고추가 들어온 뒤에도 1600년대까지 김치에 ‘참초(眞椒)’를 사용했고,
1700년대에는 고추를 넣은 김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조선 전기 음식 기록에도 일부 김치 양념으로 ‘천초’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옛 문헌의 참초·천초·진초라는 명칭을 오늘날 식물학적 ‘산초’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산초와 초피는 서로 다른 식물이지만 옛날부터 지역에 따라 이름이 섞여 사용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산초·초피류의 톡 쏘는 향이 고춧가루가 흔해지기 전 음식의 향과 자극을 더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꽤 흥미롭습니다.
우리 집에서 김치에 산초를 넣어 먹는 방식도 전혀 엉뚱한 조합만은 아닌 셈입니다.

2. 산초와 제피, 같은 것 아닐까요?
이 부분이 가장 헷갈립니다.
산초와 초피는 모두 운향과의 비슷한 식물이지만 서로 다른 종류입니다.
지역에 따라 초피를 제피, 젠피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산초와 이름을 섞어 부르는 경우도 있어 음식 이야기에서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산초나무 열매는 씨에서 기름을 짜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추어탕에 뿌리는 향신료로 흔히 사용하는 것은 초피나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산초가루”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로 어떤 열매인지 제품 표시를 한번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향도 조금 다릅니다.
초피는 혀가 얼얼하고 톡 쏘는 향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고,
산초는 그보다 향이 부드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동의보감에서도 산초류를 기록했습니다
산초는 단순히 음식 향을 내는 재료로만 이용된 것은 아닙니다.
『동의보감』에는 ‘진초(秦椒)’라는 이름으로 관련 기록이 있으며,
당시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맵다고 보았습니다.
구충 등 여러 용도로 사용했다는 전통적인 설명도 남아 있습니다.
또 산초나무의 과피를 전통적으로 약재로 이용했고,
어린잎은 식용하며 열매는 향미료로 사용해왔습니다.
물론 이런 기록은 당시 한의학적 관점입니다.
옛 문헌에 쓰여 있다고 해서 현대 의학적으로 특정 질환을 치료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점은 옛날에는 지금처럼 ‘음식’과 ‘약재’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고,
향신료를 음식에 넣어 먹으면서 동시에 몸에 도움이 되는 재료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4. 왜 하필 산초를 음식에 넣었을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강한 향입니다.
냉장시설도 없고 향신료 종류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대에는 음식의 냄새를 잡고 맛에 변화를 주는 재료가 중요했을 겁니다.
전통적으로 산초는 생선의 비린 향과 관련해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추어탕이나 생선요리에 산초·초피류 향신료가 잘 어울리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초가 조금 들어가면 발효된 김치 특유의 맛에 톡 쏘는 향이 더해져 전혀 다른 김치가 됩니다.
특히 고기나 기름진 음식과 함께 먹으면 향이 훨씬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산초는 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많이 넣는다고 더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소량부터 넣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5. 산초는 지금도 생각보다 다양하게 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초는 지역에 따라 활용법이 꽤 다양합니다.
산초 열매로 기름을 짜 산초기름을 만들기도 하고, 어린잎이나 열매를 음식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김치나 장아찌에 소량 넣거나 생선요리, 고기요리에 향신료처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추어탕에 넣는 가루는 초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초=추어탕 가루’라고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산초는 요즘 갑자기 등장한 특별한 식재료가 아닙니다.
고추가 김치의 대표 양념이 되기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산초·초피와 가까운 향신료를 음식에 사용했고,
한편으로는 약재로도 활용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지금도 김치에 산초를 조금 넣습니다.
어릴 때부터 먹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옛 김치 기록을 찾아보니,
오히려 꽤 오래된 음식 문화의 흔적을 이어 먹고 있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다음번 산초 향을 맡게 된다면 추어탕만 떠올리지 마세요.
그 작은 열매 안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된 우리 음식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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